경남 | ‘열사의 염원, 손배가압류 금지하라!’ 배달호 열사 20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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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지부 작성일23-01-10 15:16조회4,0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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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경남지부는 9일 두산중공업 정문 앞에서 ‘배달호 열사 20주기 열사정신계승! 노조법 2, 3조 개정! 금속노조 경남지부 추모제 및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안석태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은 “열사의 죽음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열사의 염원이 실현되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열사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서 살아남은 자들이 열사의 의무를 계승하고 실천하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올해는 우리를 지킬 것이냐, 아니면 반동 윤석열 정권을 비롯한 자본과 정권, 검찰, 경찰 권력기관이 일체화되어서 자행하는 탄압을 굴복 시킬 것인가 하는 싸움이다. 판가르기 싸움에 준하는 항쟁을 조직하자. 그것이 총노동전선 구축과 총파업으로 표현될 것”이라며, 올해 강력한 투쟁을 호소했다.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노조법 2조와 3조가 국회에 상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많이 기대했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배달호 열사가 20년 전 손배가압류 때문에 목숨을 바쳤고, 20년이 지난 지금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에게 손배가압류 폭탄이 퍼부어지는 현실을 살아고 있다”라며, “내년 총선이 다가온다. 후보 단일화만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노동자 서민들이 지지할 수 있는 사회적 의제와 요구를 전면화하고, 흩어져 있는 모든 진보정치 세력이 함께할 수 있는 공동정책 마련과 공동선거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라며 2024년 총선 승리를 위한 공동선거대책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김창근 전 금속노조 위원장은 “과거 배달호 열사 투쟁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민, 동지들이 있다. 잘 모르는 젊은 청년 동지가 찾아와 조직팀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했었다. 그 동지는 이후 두산중공업 사내하청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한 동지는 전국을 누비며, 두산 재벌 규탄 집회를 이끌었고, 지금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로 금속노조 조합원이 되어 있다”라며 당시 투쟁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소환해냈다. 이어 김 전 위원장은 “오늘 자리가 젊은 동지들이 왜 배달호 열사가 죽을 수 밖에 없었고, 왜 배달호 동지를 열사라고 하는지, 열사가 무엇인지, 열사 정신이 무엇이고 그걸 계승하는지 고민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배달호 열사 투쟁 당시 함께 했던 석영철 전 경남도의원과 여영국 정의당 경남도당 위원장의 발언도 이어졌다.
석영철 전 경남도의원은 “당시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사무처장이었다. 20년 동안 추모제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2003년 1월 9일 광장 모퉁이에 도착해서 마주했던 배달호 열사의 시신과 그 이후 가졌던 열사 정신에 대한 고민을 잊을 수 없다”라며, “배달호 열사가 분신으로 돌아시며 만들어냈던 손배가압류 폐기, 20년 지난 오늘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함께 결의하자”라고 밝혔다.
여영국 정의당 경남도당 위원장은 “금속노조 경남 정치 담당자로서 민주노총 정치담당자 회의를 위해 충청도로 가던 중 소식을 듣고 바로 두산중공업을 향했다. 그렇게 63일간 함께 싸우고 또 구속되었다. 2003년은 온전히 배달호 열사와 함께한 한 해였다. 그 투쟁을 하며 진보정당을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라며, “자본보다 사람을 우선하고, 노동의 가치를 우선하는 것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열사의 뜻을 이어받아서 투쟁을 만들어내자”라고 밝혔다.
이성배 금속노조 경남지부 두산중공업지회장은 “두산중공업지회에 배달호 열사가 자본의 탄압에 산화한 이후 입사한 조합원이 절반이 넘는다.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열사 정신을 계승해 실천해 나갈지 고민해봐야 할 시간인 것 같다”라며,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대공장이 먼저 사업장을 벗어나 노조법 2, 3조 개정을 위한 발걸음을 시작해야한다. 썩어 빠진 윤석열 정부를 무력화하고 두 번 다시 노동자가 탄압받는 세상이 오지 않도록 결의를 다지자”라고 밝혔다.
정문에서 추모제를 마친 참가자들은 행진을 하여 인근에 있는 추모 비석으로 이동해 헌화를 하였다. 앞선 7일 두산중공업지회는 솥발산 묘역에 있는 배달호 열사를 찾아 참배를 진행했다.
배달호 열사는 지난 2003년 1월 9일 민주광장에서 사측의 노동탄압에 항거하며 분신·산화했다. 두산 사측은 지난 2000년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고 나서 1100명을 구조조정했고, 2001년 소사장제를 도입했다. 노동조합은 사측의 일방적인 운영에 문제를 제기해 왔고, 2002년 임단협 과정에서 47일간 파업을 이어갔다. 이후 사측에서 18명을 해고하고, 89명을 징계했다. 배달호 열사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으며, 2002년 12월 26일에 징계기간이 끝나고 복직했으며, 사측으로부터 재산과 임금이 가압류 중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