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북 | #4 여성조합원 인터뷰 - 멋진 금속언니들의 뒤를 잇고파 (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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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충북지부 작성일23-03-02 04:19조회3,3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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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3.8여성의 날을 앞두고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 여성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현장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더 평등한 노동현장을 만들기 위해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
인터뷰 후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앞으로도 멋있는 여성기획을 만들어 줄거라 기대한다며 여성들이 목소리 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지부에 긴급한 일들이 많아 여성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스스로 쉽지 않았는데, 덕분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무겁지만 기분 좋은 기대감을 전해준 고마운 이수정 조합원을 여러분께도 소개합니다.
# 네번째 만남, 멋진 금속언니들의 뒤를 잇고파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 개별조합원 이수정"
# 일용직, 파견직, 계약직으로
저는 올해로 만 27세 된 이수정이라고 하고요. 금속노조의 조합원입니다. 자동차 부품회사 품질경영팀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저희팀은 중년남성이 15명정도 함께 일했는데, 그 분들의 일을 서포트 하는 사무 보조 일을 했어요. 주로 보고서나 체크시트를 정리하고, 총무 업무를 맡아서 했어요. 이 회사에 처음에는 일용직으로 채용되서 1년 일하고, 그 다음에는 파견직으로 2년, 그 다음에는 계약직으로 1년 일했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돼서 고용신분을 바꿔가며 저를 채용한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는 사무직으로 채용된 여성들 중 80%는 저처럼 비정규직에 박봉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 ‘여자라서’
입사 초기부터 듣기 불편한 말을 많이 들었어요. 친구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거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면서 옷차림에 대해 평가를 하거나, 제가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여자애가 있어서 좋겠다는 등의 말을 들었어요. 또 여성은 섬세해서 이런 걸 잘한다면서 저한테 문서를 글씨로 직접 쓰는 걸 요구하기도 했거든요. 저 글씨 진짜 못 쓰는데, 너무 이상했어요. ‘여자라서’를 붙이며 커피 타라고 시키고, 사람 접대하는 일을 시키면 정말 싫거든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여자한테 떠 넘기는거 같기도 하고,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지만 너무 불쾌했어요. 특히 사수랑 팀장이 좀 집요하게 그랬어요. 물론 전반적으로 다 그런 분위기이기도 했고요. 좀 생각이 괜찮다 싶은 분도 있었는데 이런 문화를 못 버티고 결국 퇴사하시더라고요.
시간이 점점 지나니까 운전면허가 없으면 남자친구 집에서 밤에 어떻게 집에 갈거냐는 둥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말들을 하시고, 여성들에 대한 이상한 소문도 막 내시고 성적 농담도 서슴치 않으시더라고요. 또 남자직원들이 모여서 종종 회사 홈페이지 사내 게시판에 새로 온 여성 직원들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든요. 그거 보면서 외모품평에 남자친구 있는지 물어보라고 시키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자리에 있어도 저는 사람 취급을 안 했어요. 아니면 제가 있어도 그런 행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해요. 여성을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니라 그저 ‘여성’으로 성적대상화해서만 생각한다는게 정말 별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를 제기한건 제가 처음이예요. 다른 팀들도 여성들이 소수고, 여기와 비슷한 처지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여성들도 본인은 원래 당했으니까.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남성분들처럼 행동을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더라고요. 그 문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들 스스로 변해버린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 변화의 시작, 폭발
처음에는 사회 초년생이라서 불편하다, 하지 말라는 말을 잘 못했어요. 그런 의사를 표현하면 나한테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혼자 여자니까, 불리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남성들끼리 편들어서 저만 나쁜 사람으로 만들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더라고요. 또 한번은 회식때 2차 가자는걸 싫다고 명확하게 의사 표현했는데도, 그래도 가자면서 억지로 끌고 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여긴 내가 뭐라고 말해도 내 말을 듣지 않겠구나’하고 마음을 접었던 것 같아요. 그만두더라도 조금 더 당당하게 이야기 했어야 하는데 아쉽기도 해요.
그런데 그때 당시엔 이거라도 해야지, 이거 아니면 돈을 못 번다고 생각했어요.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미 자존감이 바닥인 상태여서 여기 아니면 또 어디서 직장을 구하겠나 싶었거든요. 이렇게 4년을 버티고나니 제 성격도 많이 변했어요. 자존감도 낮아지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되고, 남들에 대한 경계심도 커진 것 같아요. 그러다 결국은 폭발하더라고요. 남성들에게 성희롱, 갑질을 당하면서 스트레스, 우울증도 심해지고 더는 못참겠다 싶어서 노동부에 신고를 하게 됐어요.
또 남성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여성혐오, 페미니즘 이런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거든요. 그래서 여성 인권이 좀 더 나아졌으면 생각했고, 여성들이 계속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서 대표로 나선 것도 있거든요. 남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얕잡아보고 갑질하는 것들을 경계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금속 마스크로 시작된
처음에는 노동부에 진정을 넣고 나서 지인 소개로 음성노동인권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어요. 상담을 받고나서 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님이 저한테 마스크를 주셨는데 거기 ‘금속’이라고 써져있더라고요. 사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게 또 있지 않을까해서 알아보다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금속’이 써있는 마스크를 받으니 바로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전화해서 가입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 힘든 일이 더 많은데, 노동조합과 함께하니 마음이 놓였어요. 저 혼자라면 그냥 흐지부지했을 사건들이 세상에 알려졌고, 저를 지지하고 함께 해주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어요. 새로운 경험도 됐고 남들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싸워주시는 구나,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저도 연대할 수 있을 때 연대해야겠다고도 다짐했어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이 될지 몰라서 좀 착잡한 기분도 들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남아있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 된 생각은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예요.
# 누구편인지 모르겠는 노동부
음성노동인권센터랑 금속노조의 도움을 받기전에 저는 당연히 노동부가 저를 도와줄거라고 생각하고 진정을 넣었어요. 사실 그냥 개인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노동부뿐이잖아요. 그런데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동부가 사측이 제출한 자료를 가감없이 증거로 받아들였다는거예요. 사측이 제 개인 블로그 내용 중 일부를 캡처해서 증거자료로 제출했거든요. 제 사생활을 파고들은것 같아 그 부분도 기분이 나빴는데, 그 내용을 근거로 제가 평소에도 남성혐오가 있었다고 주장했다는거예요. 사실 여성근로감독관이 사건을 맡았기때문에 내심 안심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을 믿고 증거로 받아들였을때 정말 어이가 없었고 분했어요. 정말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여성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넣으려는 행동이 너무 비열하다고 생각 해요. 성희롱의 피해를 여성에게 묻는일은 정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일상의 회복
저는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요즘은 자면서, 고양이들과 놀면서 무료한 생활을 보내고 있어요. 가끔 음성노동인권센터에도 들려서 일도 도와드리고, 음성 개별조합원 모임도 한번씩 나가고 해요. 이제 책도 읽고 좀 활동적인 걸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고, 건강도 회복되면 일상으로 돌아가서 일자리도 새로 구해야 되겠죠. 제가 이 일 그만두면 인사팀에서 일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인사팀은 노동조합에 가입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원래 했던 것 중에서 색다른 일을 도전해보고 싶어요. 체력이 되려나 모르겠지만 현장직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
# 멋진 금속 언니들
저는 금속노조에 여성조합원이 많이 늘어나서 비율이 딱 맞춰졌으면 좋겠어요. 남성들이 많은 곳은 아무래도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있으니까요. 여성들이 많이 늘어나서 유리천장 같은 것도 사라졌으면 하고요. 또 여성으로서 부당한 일을 당하고 힘들때가 많을텐데 이런 자리가 만들어져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난번에 주신 ‘여성노동자 반짝이다’ 책 같은걸 시리즈처럼 계속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거 읽으면서 여자라고 무시당하는 부분들이 정말 공감됐거든요. 또 성폭력을 당하고, 피해를 호소하고, 실패와 좌절의 과정을 읽을때는 눈물이 났어요. 잘 해결되고, 산재처리도 되서 다행이다 싶었죠. 그걸 보면서 금속 언니들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꼭 얼굴을 보고 싶고 악수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수고 많았다고 마음을 토닥여주고 싶거든요.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에 저처럼 직장 내 성폭력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정말 도와드리고 싶어요. 처음에는 목소리를 내는 게 너무 어렵잖아요. 그런데 목소리를 내면 분명 함께 연대할 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면 좋겠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주세요.
인터뷰 날짜 : 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