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요? 노동죽이는 절대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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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기지부 작성일13-02-04 05:38 조회1,743회본문
한국의 노동을 죽이는 절대왕조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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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오전 11시, 에버랜드 정문 앞에서는 삼성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최초로 집단가입한 사실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는 금속노조 부위원장과 담당국장,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간부들, 충남지부 간부, 삼성노동권감시를 위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가 하였다.
삼성생명 등 삼성이 인수하기 전 노조를 만들었던 회사에는 삼성이 인수한 후에도 노조가 있다. 또한 노조설립을 막기 위해 삼성관리자들 중심으로 만든 소위 ‘유령노조’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노조들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다.
에버랜드만 해도 종업원이 6천여명이고 비정규직이 많을 때는 2만이 넘는다. 삼성과 거래관계에 있는 회사를 포함하면 고용된 인원만 어림잡아도 300만이 넘는다. 삼성이 무노조인데 삼성과 거래하려면 당연히 노조가 없어야 한다. 거래하는 기업에 노조가 생기면 거래가 끊기거나 혹은 노조를 없앤다.
삼성의 노무관리 기법은 삼성가의 재벌회사들, 거래관계에 있는 회사들, 한국 사회의 다른 기업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왔다. 삼성은 노무관리만이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는 프레임을 만든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기업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도록 만든 프레임도 삼성에서 시작되었다. 삼성의 지원을 받는 장학생이 사회곳곳을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삼성의 힘이 크니 겁부터 낸다. 노동계도 삼성에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삼성노조는 설립이후 1년 넘게 민주노총에 가입을 원했지만 떠돌아야 했다. 연대와 지원이 약하니 현장의 삼성노동자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삼성지회의 간부들은 “현장 노동자들이 금속노조가입을 원했다. 핵심이유는 가장 믿을 만한 조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삼성연구자는 삼성노조의 금속노조가입 소식을 듣고 기자회견 제목을 “민주노총 개과천선”이라고 뽑으라는 ‘진한 농담(=진담)’을 했다.
삼성노동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고 축하를 보내려는 마음을 콱 붙드는 묵직한 것이 있다. 왜 삼성에서 노조건설은 거듭 실패하게 되었을까? 답을 알았다면 결코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이 너무 강해서 일까.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적이 너무 강해서 패했다면 진단치고는 완전 꽝이다.
왜 삼성에서 노조설립을 추진하던 사람들은 모두 해고되고, 오랫동안 고립되서 활동하게 될까? 노동계는 삼성에 대해 감금, 폭행, 납치, 매수 등 노동탄압을 떠올린다. 지금도 그렇게 관리할까. 최근 이마트에서 철저한 노동감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시스템에 의한 관리가 정착되었다. 시스템에 의한 관리의 허점을 파고든 사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비공개 조직화를 통해 일시에 노조를 설립하는 전략(=비밀주의 전략)은 촘촘한 감시 시스템에 무력했다.
삼성노동자들은 ‘공포와 충성’의 하나를 택해야 했다. “회사에 밉보이면 패가망신 한다”는 공포가 떠돈다. 억울하고 분해도 참아야 한다. 백혈병 등으로 죽어야 그때서 더 잃을게 없는 최악의 밑바닥에서 저항을 한다. 생명을 뺏긴 당사자들은 싸울 수도 없다. 죽은 노동자들의 유가족들의 몫으로 남는다. 회사에 있을 때 싸울 수 없으니 해고당하기 직전이나 해고된 후에나 노조를 만들지만 이미 벼랑에서서 성공하기 어려웠다.
왜 가장 밑바닥에서 목숨을 잃어 버린 백혈병 등 중대산재로 죽은 피해자 가족들의 투쟁만이 처절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공포를 넘어설 만한 방패막이 약하다. “삼성의 문제점은 안다. 그렇지만 삼성의 기여가 크지 않냐.” 삼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 태도는 새삼스런 게 아니다. 이 국민들의 이중적 태도는 죽은 노동자 가족들의 절절한 외침을 짓눌러 버린다. 우리 사회의 삼성에 대한 이중적 감정은 삼성왕국을 유지 강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조를 정치화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노조는 사회화하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과연 이런 노조의 전략이 유효한 것이었는가. 10.1%라는 최악의 노조조직률을 막지 못했다. 정치세력화는 공포를 넘어 노조를 만들 수 있는 방패가 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삼성노동자의 금속가입은 또 실패사례가 되지 않으려면 축하보다는 총체적인 성찰과 재검토, 새로운 접근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시대에 삼성왕조를 그대로 두고 노동권이 활짝 피어나길 기대하는 것은 거짓이다. 경제민주화는 삼성왕조를 지탱하는 기업내의 왕조적 지배가 있는 한 쌩 구라에 그칠 것이다. 그것은 삼성노동자의 비극이 아니라 대한민국 노동자 전체의 비극이다. 반면 삼성에서 노조의 성공은 삼성그룹 노동자와 관계사들의 노동자에게 큰 용기를 일으킬 것이다.
삼성그룹이 망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안에 있는 절대왕조와 그 아래에서 짓밟힌 노동권을 주목해야 한다. 다행히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삼성의 노동권 감시를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노동계를 넘어서 묵혀둔 이 문제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