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북 | #5 여성조합원 인터뷰_ 노동조합을 지키는 힘 (김시연, 조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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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충북지부 작성일23-03-27 10:54조회3,0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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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8여성의 날을 맞아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 여성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현장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더 평등한 노동현장을 만들기 위해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
콘티넨탈지회 여성조합원 두 분을 만났습니다. 콘티넨탈지회에 10여년 전 불어닥친 노조파괴 공작에도 금속노조에 남은 분들입니다. 무엇이 그 분들을 남게했는지, 노동조합이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지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도중에 저를 궁금해하며 인터뷰 하시던 두 분은 제가 애도 있다고 하니, 이런저런 걱정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답니다. 인터뷰하다 인터뷰 당하기는 처음이었지만 그 관심과 애정에 감사했습니다. 그럼 콘티넨탈지회의 여성 조합원 두 분을 소개 합니다!
# 다섯번째 만남, 노동조합을 지키는 힘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 콘티넨탈지회 조혜미(좌), 김시연(우) 조합원
(시연)_ 안녕하세요. 올해 45세 된 김시연입니다. 콘티넨탈은 자동차 계기판을 주로 생산하고, 그 외에도 자동차 에어컨이나, 라디오 스위치 같은 TC를 만들어요. 현장에서는 완제품을 만들기 위한 조립과 제품 검사 일들을 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취업 나와서 계속 일하다보니 26년이 됐네요. 여기서 남편 만나서 애도 낳고 지금까지 쭉 다니고 있어요. 언젠가는 빨리 나가고 싶긴 한데 쉽지는 않네요.(웃음)
저는 학교에서 실습으로 처음 이곳에 오게 됐어요. 그때 대전에서도 오고 옥천, 옥산 여러 곳에서 엄청 많이 온걸로 기억해요. 원래 회사가 수원에 있어서 처음 3개월은 올라가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현 세종) 부지로 내려올 계획을 갖고 이쪽 사람을 뽑은 거예요. 그때 큰 규모의 여직원을 만드려고 했었대요. 여자 기숙사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콘티가 실패한거죠. 아무래도 여자들은 뭐가 많잖아요. 결혼하고, 임신하고, 휴가도 그렇고. 야간도 못 들어가고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남자들을 뽑기 시작했어요. 여자들은 중간에 임시직, 알바처럼 뽑고요.
(혜미)_ 저는 조혜미고요. 근무한지는 21년 되어가요. 저는 20대 초반에 사무 일을 했어요. 그런데 먼 친척뻘 되는 분이 본인 딸 주려고 가져온 서류가 딸이 공장 안들어가겠다고 해서 저한테까지 넘어 왔거든요. 그래서 그냥 써서 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공장 직원을 뽑는데 1박 2일 면접을 보나싶었어요. 그런데 면접끝날 때 차비하라고 봉투를 5만원이나 주더라고요. 첫인상이 괜찮았죠. 그 당시 5만원이면 정말 큰 돈이었거든요. 면접 온 사람중에 회사에 친척이나 형제있는 분들도 많아서 당연히 난 떨어지겠지 했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제가 처음으로 뽑은 정규직이라고 하더라고요. 시연이 말처럼 그 전에는 임시직으로 주로 뽑았던거 같아요.
# 금속은 쳐다보지도 마
(혜미)_ 제가 면접 볼 때 면접관들이 다 사무실 쪽 과장, 부장 이런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우리 면접 볼 때 앉혀놓고 한다는 소리가 금속은 쳐다도 보지 말라고 했어요. 문 앞에 갈 생각도 하지 말고, 나쁜새끼들이니까 거기에 발 들여놓을 생각도 하지 말라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남덕오빠(현 지회장)가 정식된 사람들한테 맨날 커피 한 잔 마시자고하면, 다 도망갔어요. 저도 필사적으로 도망갔는데 이상하게 꼭 붙잡혔어요. 피해다니긴 했는데, 일하면서 친해지고 도움받는 분들이 대부분 금속노조 분들이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이하게 됐죠.
처음에 아무것도 몰랐을때는, 회사에서 일 하고 월급을 받아야지 왜 허구헌 날 파업을 하나 했어요. 제가 4월 18일에 입사했는데 임·단협이라고해서 입사하자마자 파업을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맨날 어디 집회하러 나가고, 길거리로 다니고, 영동도 가고 이러는 거예요. 버스 타고 이 짓을 왜 해야 되는 건가 싶어서 도망도 많이 다녔거든요. 그러다 점점 도움도 받고, 연대하고 그러면서 노동조합에 대해서 알게된것 같아요.
# 위기에 느낀 진정한 단결
(시연)_ 저도 처음에는 노동조합에 대해 전혀 몰랐고 관심도 없었죠. 지내다 보니까, 노동조합이 우리를 대변해 주고 뭔가를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있구나. 억울하면 가서 얘기도 할 수 있는 거구나하고 알게됐어요. 그런데도 전에는 노동조합 활동에 열심히 따른다기보다는 그냥 해야 하니까 같이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복수노조가 생기고 하나였던 노동조합이 갈라지면서 더 적극적이게 됐죠. 처음에는 금속에서 열심히 간부며, 대의원이며 활동하던 사람들이 돈 때문에 어용노조로 가는걸 보면서 실망감도 정말 컸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더 단결되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노동조합을 지키려던 사람들이 해고되고, 단식투쟁하며 너무 힘들어하는걸 보니까 앞장서서 나서지는 못해도 금속이 하는걸 따라줘야겠다 싶었어요. 더 같이 있어줘야겠다, 뭐 하자고 하면 한번 더 같이 해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더라고요.
(혜미)_ 노동조합이 갈라지면서 몇 명 안남았잖아요. 우리끼리 단결되는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어용노조랑 다시 안 합치는게 낫겠다 싶고, 그냥 이대로 가면 좋겠다 싶었어요. 딱 생각과 마음이 맞고 같은 길로 한 방향 보면서 갈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한다는 게 좋더라고요. 예전에는 이 사람 저 사람 가기 싫은데 억지로 끌고 가고, 너 왔니 안 왔니 체크하고 이랬는데, 이제는 간부들이 결정하면 우리가 따르니까 좋더라고요.
해고자들 위해서 같이 연대하고 싸웠던게 좋았어요. 우리가 파업권이나 다른건 다 내줬지만 그래도 지켰으니까요. 해고된 분들이 복직했을 때 마음이 정말 좋았어요. 해고된 분들이 잘못한게 없잖아요. 노동조합 지키려고 한건데 정말 미안한 마음이 많았거든요. 다 내줬어도 우리가 뭔가 해낸 것 같았어요.
(시연)_ 그런데 지금은 노조파괴 된지 10년이나 지나서그런지 다시 마음이 느슨해졌어요. 현장에서도 처음에는 어용노조로 넘어간 사람들이랑 인사도 안했었는데 지금은 똑같아졌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이제 인사도 하게 되고 똑같이 놀고 그래요. 조합도 마찬가지예요. 해고된 분들도 복직되고 어느 정도 해결 되니까 이제 좀 안 시켰으면좋겠고 그래요.(웃음) 지금도 지회장이 다시 달려서 뭔가를 해야 된다고 하는데, 굳이 뭘 해야 되나. 그냥 앞으로도 똑같을 것 같은데 싶기도 해요.(웃음)
# 고마운 마음이 모여
(혜미)_ 복수노조 생기기 전에 회사에서 정규직 직원을 추가로 뽑는다고 했을때였어요. 그때 금속에서 임시직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먼저 뽑고서 뽑아야 되지 않냐고 태클을 걸었나봐요. 정규직 먼저 뽑지 말고, 여기 남아있는 사람부터 정규직을 하라고 한거죠. 그래서 그때 재환씨, 지나, 미경이, 나영이, 이현이, 종민이 얘네들이 다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요. 그때만 해도 금속이 힘이 있을 때 였거든요. 지금은 금속이 힘은 없지만 그 친구들은 그때 그 고마운 마음 때문에 여전히 금속노조에 남아있다고 하더라고요.
(시연)_ 저도 임신해서 계속 회사에 다닐 수 있었던게 노동조합 때문에 그 힘으로 다녔거든요. 그 당시에는 배부르면 눈치 보여서 대부분 나갔어요. 배불러서 옆 사람한테 피해주는거 같기도 하고, 회사에 눈치도 보이고 그렇잖아요. 위에 기장이나 그런 사람들이 계속 ‘이렇게까지 다녀야 되냐, 집에서 애나 봐라’ 이런식으로 암암리에 계속 눈치주는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어쩔수없이 그만두신 분들도 많아요.
임신해서도 계속 다닌게 저희 또래가 첫타였어요. 그래서 밑에 애들도 언니들이 처음 시작을 해줘서 자기들도 다닐 수 있다고 고마워하거든요. 그런데 저희도 계속 다닐 수 있었던건 저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회사 압박이 있을 때 노동조합 힘을 믿고 얘기를 하면 노동조합에서 회사에 얘기해서 막아주고 그런 게 있었죠. 그래서 너무 고마워서 남았어요. 고마움이 너무 커가지고. 지금 금속에 남은 사람중에 10명이 여성들이예요. 전체 인원을 놓고 보면 우리금속에 여성들이 많이 남은 거죠. 아마도 다들 저처럼 고마운 마음들 때문에 남은게 아닐까 싶어요.
# 우리가 원하는 건 선심이 아냐
(시연)_ 예전에는 남자들이 무거운거 있으면 옆에서 도와주기도 하고 그랬는데, 갈수록 여자도 똑같이 하는거 같아요. 먼저 도와주겠다고 하는건 정말 몇 명밖에 없어요. 전에는 '좀 도와주지'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었는데, 이제는 싫더라고요. 치사해서 말 안하죠. 남녀 평등이니 하고 이야기도 나오잖아요. 다른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다보면 다들 말 안하고 그냥 본인이 한다고들 하더라고요.
(혜미)_ 예전에는 그런일도 있었어요. 여자들은 유급으로 생리휴가로 하루씩 쉬거든요. 그런데 남자들이 그거 없애자면서, 우리도 하나 만들어주던지 너네꺼 없애던지 하자고 한적도 있다니까요. 그럴때 참 그렇더라고요.
또 일하면서 애기들 키울때 애가 아프다고 연락오면 가야 되잖아요. 그런데 애는 개인 사정이고 집안 사정이지 회사랑 뭔 상관이냐면서 휴가를 못쓰게 할때가 있었어요. 남자들이 애를 돌보지는 않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애키우는 여자들만 발을 동동거렸죠. 눈치 보면서 음료수 갖다 바치면서 휴가 쓰고 그랬어요.
임금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군대 때문인지 시작은 다른 것 같아요. 그 이후는 임금 협상하니까 똑같이 올라가고요. 진급은 저희는 반장을 달아주는데, 남자들은 잔업도 열심히 하고 야간도 하고, 특근도 하는데, 여자들은 아무래도 가정이 먼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잔업도 안해, 야간도 안해, 특근도 안하니까 남자들을 더 달아주더라고. 그런데 남자들은 같이 골프도 쳐주고 술도 마셔주고 일도 열심히 해주니까 먼저 달아주겠죠. 20년이 되면 자동으로 반장보가 되는데 이 보를 떼는 것도 윗사람 마음이예요. 일 많이 하고, 금속 아닌 사람들만 빨리 떼더라고요.
# 함께 있어주는 힘
(시연)_ 지회장님이 매일 연대 가는걸 보면, 힘든데 왜 굳이 저렇게까지 돌아다니나 싶었어요. 그런데 저도 연대를 갔을때 어느순간 느꼈어요. 이렇게 연대하는게 그분들한테는 힘이되는구나 연대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그래서 지회장님도 연대를 하고 도와주러 가는거구나 싶더라고요. 노동조합 활동이 바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렇게 서로 오고가는게 힘이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콘티넨탈지회도 어려울때 많은 분들이 함께 해줬고요.
그래서 누군가 이 글을 읽는 분이 있다면, 투쟁하는 사업장과 노동조합과 그냥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함께 있어주자고 말하고 싶어요.
인터뷰 날짜 : 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