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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크레인앞] 이소선 어머니 추모의 밤 9/6 > 소식지/선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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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크레인앞] 이소선 어머니 추모의 밤 9/6

페이지 정보

작성자 부산양산지부 작성일11-09-07 01:05 조회1,437회

본문

"제대로 살 수 있도록

 

늘 길잡이가 돼주셔서 감사합니다

 

--- 안녕히 가세요 어머니"

 

- 김진숙 노동자의 추모사에서-

 

장례를 하루 앞둔 9월 6일 저녁 7시 30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이자, 영원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님의 추모제가  부산영도 한진중공업 85호크레인이 보이는 길가에서 1,000여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이소선 어머님은 살아생전 병석에서도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김진숙한테로 가야된다"고 했다.

장례대책위원회는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9월 6일 오전 11시  서울대 병원 빈소에서 영정을 직접모시고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한진중공업 박창수열사 아버님 등 60여분으로 이루어진 '희망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이소선 어머님은 오후 5시경 박창수열사, 김주익열사, 곽재규열사 등 33분의 노동자 민주열사들이 계시는 양산 솥발산공원에 들렀다. 저녁 7시 30분경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앞에 마련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추모의 밤' 연단에 고이 모셔졌다. 

 

저녁 7시 30분, 서울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으로 달려온 이소선 어머님

이소선 어머님의 약력을 보고하고 있는 윤택근 민주노총 부산본부장

 

어머님 생전의 모습을 담은 추모영상이 6분간 방영되었다.

 

어머님의 영정을 뒤로 하고 추모사를 하는 한진중공업 박창수열사 아버님. 

이어서 부산 민예총 박령순 등 3명이 나와 추모의 노래를 불렀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동영 국회의원은 추모사에서 '꼭

국정조사를 성사시켜, 조남호 회장의 온갖 부정비리와 잘못된 정리해고를 밝혀내겠다'고 했다.

 

 두 어머님. 이소선 어머님은 유가족 협의회 대표를 맡으셨고 추모사를 하는 이정이 어머님은 전 민가협 대표를 맡으셨다. 

 

1970년 11월 전태일열사가 돌아가실 때의 어머님 모습을 재연하는 추모극.

이어서 부산 민예총 풍물 자락에 맞추어 '헌무'가 어머님 영전에 펼쳐졌다.

 

이소선 어머님을 가슴에 묻는 노동자의 마음.

 

밤 9시 40분경 추모의 밤이 끝나고

희망버스 60명,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투쟁위원회 30여 명의 노동자들은 이소선 어머님을 모시고 어둠을 뚫고  서울의 새벽을 향해 출발했다.  

김진숙 노동자가 앰프 연결된 손전화를 이용해 추도사를 했다.

왠일인지 크레인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추도사를 읽는 김진숙 노동자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없었다.

 

85호크레인에서 보내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추도사

결국 이렇게 오셨습니까. 희망버스 타고가서 해고된 한진노동자들 보고싶으시단 말씀이 결국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까.

어머니, 쓰러지시기전 두 번이나 전화를 하셔서 오시겠다는 걸 곧 내려가서 뵙겠다고 못오시게 했던게 이렇게 후회가 될 줄 몰랐습니다. 억울한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시던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싸우는 노동자들을 보시기 위해 이 먼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20세기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져갔던 열사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여의도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하실 때, 그 추운 겨울 천막안에서 어머니, 아버지들이 라면을 끓이고 계시더군요. 라면보다 더 많은 약을 드시면서 매일 뜯겨나가는 천막을 붙잡고 422일을 싸우셔서 만들어낸 법안에 의해 제가 마침내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을 받고 부당해고와 복직결정까지 갔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감사드린다는 제 인사에 어머니께서는 ‘니들이 꼭 열심히 싸우면 니들 후손들이 혜택을 보고 살겄지’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것은 다 내주고 이 땅 노동자들을 위해 평생을 사셨던 분, 어머니는 그런분이셨습니다. 노동자는 단결해야한다고 늘 강조하셨던 말씀은 어머니 삶에서 나오는 평생의 철학이었고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해 죄송하고 송구스런 말씀뿐입니다. 내려가서 뵙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병원에 계실 때만이라도 찾아뵙고자 했던 다짐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기다리시게 한 시간들이 너무 길어, 왜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질 못하고 그렇게 가셨나 하는 원망도 할 수 없습니다.

 

전국의 열사들 장례식을 도맡아 치렀던 박성호 동지도 어머니를 가시는 길 제 손으로 보내드리지 못하는 것을 너무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박영재, 정홍영, 오늘로 단식23일째 신동순 동지, 그리고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의 뜻을 가슴에 품고사는 우리 조합원들 다 같은 마음입니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그리고 비록 다른 노동자들까지 모두 같은 자식으로 품고 사셨던 어머니, 이제는 하늘 나라에서마저 수많은 자식들을 품고 사실 어머니. 먼저 간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사신 어머니에게 살아있는 자식들이 얹혀 살았던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제, 편안히 가세요. 배가고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아드님 만나고서 이승의 고통이랑 다 내려 놓으시고 못다한 얘기, 못다나눈 정 맘껏 나누세요.

 

어머니로 인해 스스로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지키지도 달라지지도 않는다는 걸 깨달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어머니를 기억할 것입니다. 어머니,생전에 그러셧듯 먼 길 마다않고 와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손도 못 잡아보고 승리의 소식도 전하지 못한채 이렇게 애통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리지만 정리해고 없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열심히 살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어머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