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2시가 되자 아줌마들, 흰머리 아저씨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젊은이들도 간혹 보이구요. 작업복차림으로 오신 분들은 희고 붉은 페인트가 묻은 채로... 한진중공업 지회 간부들도 총동원되었군요. 50여 명의 투쟁조끼를 입은 간부들. '단결투쟁'이 쓰인 붉은 머리띠를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나눠주며 머리띠를 묶어주는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터치업하는 아줌마들, 파워하는 아저씨, 스프레이뿌리는 아저씨. '도장공' 70여분이 한진중공업 본관앞 콘크리트바닥에 질서정연하게 앉고, 한진중공업 지회 간부들은 그 양옆에 가지런하게 앉았습니다. '억울해서 못살겠다, 고용승계보장하라'는 구호을 따라하는 하청 도장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두세번, 따라외치면서 일자리를 잃고 임금도 못받는 '노동자'의 마음이 확 전해지는 것같습니다. '누가 나와서 속에 있는 이야기 한번 하지죠'라고 사회자가 요청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40대 파워공 아저씨께 마이크를 갖다대자, 벌떡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딴 것 다필요 없습니다. 고용승계입니다. 먹고 살아야합니다" 피맺힌 한서리 였습니다. 설마하며 두달치 임금도 못받고 일해왔는데, 3월 31일 폐업하면서 '퇴직금도 없다.'며 나가라는 황당한 소리에 참아왔던 피울음이 터지는 소리였습니다. 터치업하는 아줌마 한분이 앉은 자리에서 마이크를 받아들고는 "법도모르고 일만 하고 먹고 살았는데, 한진중공업이 이럴 줄 몰랐다."며 울먹였습니다. 같이 앉아있던 도장공들과 한진중공업 지회 간부들이 세상이 떠나갈 듯한 박수로 위로해주었습니다. "한심하고 우습기도 합니다. 내문제가 아니고 우리 전체 문제입니다. 인간적으로 원청에서 다 들어줬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집회 사회를 보던 지부 간부가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속에서 치솟는 울분으로 입을 떼지 못하고 마이크만 두드렸습니다. "출근할 때 누가 물으면 한진간다"며 자부심을 가졌다는 또 다른 터치업 아줌마. "내가 칠한 배 진수식할 때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꽉막힌 탱크안에서 환풍기도 제대로 없어 작업할 때 뺑끼에 취해서 울고불고, 넘어지고..." "내가 한 일이 나라세우고, 한진세우고 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립니다. "어제까지 일했는데, 갑자기 오늘 나가랍니다. 다 다른곳에도 파급될꺼니까 제데로 보여줘야됩니다. 고용승계 보장받아야 됩니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시간 반가량 진행된 '고용승계, 체불임금, 퇴직금 청산' 집회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평생 집회라고는 직접해보지못한 '도장공' 아줌마 아저씨들의 한서린 목소리에는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우리뿐이 아이고 다 파급될거니께네, 무조건 고용승계 받아야 된다'는 인간적인 감정. 원청인 한진중공업의 '최저가 입찰'때문에 낮은 단가를 감당할 수없었던 사내하청 3개 도장업체가 3월 31일 폐업을 했습니다. 사장들은 2개월 임금도 체불하고, 퇴직금도 없이 180여명의 도장공들은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받을 돈은 대략 13억원. 낮은 단가에 입찰을 받은 2개 업체가 새로 들어오지만, 여기서 새로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은 어떻게 될까요? 고용은 보장이 될까요? 집회를 마치자 말자 한진중공업 조길표 지회장은 집회에 참석한 확대간부들을 모두 모아 "오늘 아침 상집회의에서 이번 사태를 지회가 끌어 안아야 된다는 결정을 했습니다"며 간부들에게 '인간적인 투쟁'을 당부하고 있었습니다. <끝> # 터치업 : 도장을 붓으로 마무리하는 작업. 주로 여성노동자들이 맡아서 한다. # 파워공 : 부드러운 그라인더로 철판의 이물질과 녹을 반들반들하게 닦아내는 작업. 먼지와 그라인더 회전으로 튀어오르는 이물질 때문에 항상 온몸을 감싸는 작업복, 방진마스크가 필수. 여름이나, 좁은 공간에서 작업할 때는 공기호스를 차고 작업복안에 공기를 주입하면서 작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