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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테크 해고자 대법승소, 드디어 그리운 현장으로 갈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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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기지부 작성일12-01-02 02:49 조회1,1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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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 주연테크 김영신 지회장과 곽은주 전지회장이 해고무효소송결과 대법원에서 최종 복직판결을 받았다. 그동안 주연테크지회는 해고복직투쟁을 벌이며 고법에서도 승소한 바 있으나 회사는 복직을 거부하고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갔다. 이번 대법승소로 회사측이 어떤 모습을 보일것인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주연테크 지회의 승소는 2012년 벽두에 희망을 알리는 첫 번째 소식이 되고 있다. (아래글은 지난해 말에 한겨레 21에 실린 주연테크 관련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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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라는 말이 입안에서 서걱거릴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온갖 일터를 전전하면서도 나는 그냥 일하는 사람이었다. 노동자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뉴스를 통해서였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투쟁하는 사람들, 나와는 다른 부류였다. 나의 의식에서 노동자는 몸으로 일하는 사람이며 일당제를 받는 부류쯤으로 자리잡았다. 언론에 비치는 ‘그들’의 현실과 내가 발 딛고 있는 직장은 서로 다른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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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어서 내게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이 진짜인지 궁금했다. 아니, 내가 사는 삶의 테두리가 현실이라면 그 반경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었다. ‘그들’의 현실과 내 삶의 반경이 어디쯤에서 만나는지 궁금하던 차에 6년째 일터를 찾으려고 싸우고 있는 주연테크 조합원들을 만났다. 지난 12월8일 오후였다.

 

치사해서 시작한 노동조합

 

긴장된 마음으로 노동조합 사무실에 들어섰다. 마실 나온 아줌마들 같은 분위기에 이내 마음이 푸근해졌다. 달디 단 다방커피를 옆으로 밀쳐두고 누구를 인터뷰할지 고민할 즈음 해고자 2명을 주로 하자고 해놓고선 모두가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어찌하지 못한 채 아줌마 5명의 수다가 시작됐다.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지회장이 바뀌었어요” 하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소개하는 이가 해고자 곽은주씨다. 조합원 해보는 게 소원이라며 학생같이 맑은 얼굴로 또박또박 얘기하는 모습에서 ‘투쟁’이라는 단어가 안 어울렸다. 한데 줄줄이 뽑아내는 말들이 연결되자 신기하게도 명료하게 상황을 잘 전달하고 있었다.

  “2006년 7월7일이 노조 창립일이에요. 회사 창립일도 똑같죠.”

그날이 의미 있기도 했지만 다들 할 말이 많았는지 한마디씩 덧댔다.

“이날 회사가 잘나간다고 처음으로 63뷔페에서 행사를 한 거예요. 그날 전체 직원이 모이는 자리라서 노조 결성 통보를 했죠.”

“회식이 지금은 1년에 한 번 있는데, 처음에는 아예 없었어요. 63빌딩에서 처음 한 거죠.”

“그때 기억난다. 생산팀과 일반팀을 따로 앉힌다고 하는 거야. 기분 확 더러워져서 안 갔어.”

“더 심한 일도 있어. 7월7일에 입사한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그날 회식하러 가며 너희는 오지 말래요.”

“많이 치사했어.”

“야유회도 사고날까봐 못 간대잖아.”

  다들 참지 못하고 입안 가득 웃음을 터뜨렸다. 구김살 없는 그들의 얼굴이 자못 놀라웠다. 그래서 ‘하루가 고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일상에 대한 질문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아침 9시까지 출근이었는데 보통 8시30분까지 출근했어요. 조립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전날 못하고 간 거를 아침에 와서 해야 하거든요. 자동화 라인이 아니라서 개인이 자재를 받아서 조립한 뒤 테스트해서 포장까지 혼자 다 하는 작업이에요. ‘셀라인 작업’이라고 해요. 초창기에는 물량이 너무 많아서 식당이 생기기 전에는 박스와 스티로폼이 막 쌓여 있는 상태에서, 그 자리를 닦을 정신도 없이 그냥 식판 갖다놓고 밥을 먹었어요. 먹으면서 모니터를 보는 거죠. 이 작업을 해야 한 대가 빨리 끝나니까. 그게 거의 일상이었어요. 대부분 40∼50대 아줌마들이라 아침 일찍 밥 챙겨주고 저녁에 퇴근해서 새로 밥 짓고 집안일을 하면 학원에서 밤늦게 아이들이 와요.”

 

 일하고 수다 떠는 일상이 사무쳐

  “같이 밥 먹기가 거의 힘들어. 얘들이 더 불쌍해.”

  이 와중에도 우리나라 학생들의 불쌍함을 걱정하고 있다. 역시나 교육 얘기로 빠지자 끝도 없이 이어지기에 말허리를 뚝 잘랐다.

  “처음 한 행동이 ‘점심시간에 밥만 먹자’ ‘쉬는 시간 지키자’였어요. 안 쉬고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일의 강도가 센데다 물량이 아주 많았거든요. 그리고 저 사람이 빨리 끝나면 내가 뒤처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우리끼리 경쟁 상대가 되는 거죠.”

“처음에는 109명으로 시작했어요. 노조탄압도 있었지만 2008년7월에 갑자기 경영난이 예상되므로 딱 열흘, 7월17일부터 28일까지 열흘을 주며 희망퇴직서를 받았어요. 서울 구로에서 경기도 안양으로 넘어오며 인원이 60% 확 줄었죠. 당시 공장 이전 날짜가 한두 달밖에 안 남았는데 본사를 폐쇄하려고 도망가더라고요. 여기는 이미 생산계약 만료고 교섭을 못하면 길거리로 쫓겨날 상황이었어요.”

  당시 실랑이 끝에 회사 쪽과 5일 만에 합의했지만, 안양으로 이전되자마자 2명이 벌금형을 받아 해고를 당했다.

  “큰 선물을 받았죠.”

  현재 행정소송으로 가며 대법원 판결만을 앞둔 은주씨에게 지상 최대의 목표는 복직돼서 투쟁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이다.

  “현장이 그리워요. 해고된 뒤 현장에 못 들어가니까 일했던 자리가 어디고 지금쯤 뭐하고 있는지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 싸워서 꼭 들어가야겠다. 많이 그립죠. 일하고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나눠먹고, 이런 것들이 소중했구나. 별거 아닌 일상이 아주 그리워요.”

  은주씨는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를 기억한다. 모니터가 뭔지 마우스가 뭔지도 모르면서 수첩 가득 적어놓은 영어를 따라 열심히 공부했던 설레는 시간을.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일이 재밌다며 현장에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얼마 전 심리치료를 받았다는 은주씨는 마음속 소원을 말하며 타로카드를 펼치라는 말에 ‘복직~’이라는 긴 여운을 담고 카드를 짚었다고 한다.

  “가을 하늘이었어요. 가을 하늘 되게 좋아하거든요. 파아란 가을 하늘에 먹구름까지 걷혀가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 같아요.”

  모두들 그렇게 될 거라며 애증관계임이 분명한 이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맞이하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런데 한마디 툭 던지는 말.

  “우리가 가는 회사마다 망했는데 괜찮을까?”

“걱정하지 마. 데스크톱 수명이 5년이니, 그 기간 동안은 괜찮대.”

  

 “7년 만에 특근해서 100만원 받지만”

  못 말리겠다. 그럼 정년퇴직을 맞이하고 싶을 만큼 이 회사가 좋은 걸까?

  “특근해서 이제 겨우 100만원 됐어요. 7년 만에. 그런데 이 사람들 보는 낙으로 다녀요.”

그들은 힘들지만 마음이 하는 일이라서 할 수밖에 없다는 조용한 떨림을 내게 전했다. 여전히 복직되기까지 험난한 투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줌마들의 투쟁에는 빨간 띠 대신 빨간 부침개가, 파업 때는 고기 구워 먹으며 냄새로 자극한다는 발칙한 반란에 벌써부터 기대된다면 이상한 일일까? 내 바로 옆에서 숨 쉬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일상을 누리길 희망하는 나와, ‘모두’와 같았다. 그리고 ‘모두 함께’ 파란 가을 하늘을 꿈꾸는 그들이 내 삶의 반경 안에 이미 들어왔다는 사실이 유쾌하게 느껴진다.

 

김형아 이야기공간 ‘설낭’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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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은주 전지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김영신 현지회장(왼쪽에서 세번째)을 비롯한 여성들의 수다가 어서 복직해서 함께 일하며 웃고 울고 싶다는 등 샛길로 빠졌다가 돌아왔다가 하며 이어졌다. 희망김장 기획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