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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수첩, 법원 판결도 안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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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기지부 작성일11-12-16 10:13 조회1,4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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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에 오랫동안 싸워온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촛불, 시민들이 함께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김장담그기를 합니다. 다르게 살아온 삶, 다르게 걸어온 걸음이지만 김장을 담그며 서로에 대해 말문을 틔우고자 합니다. '사람꽃을 만나다' 인터뷰는 김장행사의 일환으로 지역에서 오랫동안 싸워온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그녀의 삶이 투쟁 사업장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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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카한일유압에서 해고된 송태섭씨가 원직복직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파카한일유압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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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몸집을 가진 내게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일단 마른 사람은 까칠하고, 성격이 꼬장꼬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 매번 이런 선입견은 누군가를 만나 정정되지만, 쉽사리 버려지지 않는다. 이런 내 선입견에 어긋나는 사람을 또 다시 만났다. 키에 비해 살집이 없는 그. 하지만 미소가 좋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넉넉함을 가진 사람. 송태섭씨와 나눈 대화는 따뜻했다.

 

잠든 아이들, 아내의 흰머리... 그리고 34번째 해고자

 

갓 마흔 줄에 접어든 태섭씨는 다섯 살 아들과 이제 막 돌을 넘긴 딸의 아빠다. 아이들은 그에게 보물 1호. 늦은 저녁 "아빠 보고 싶어~"라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들 녀석의 칭얼거림은 지친 하루를 위로해 준다. 그렇지만 오늘도 만사를 제쳐두고 쉽사리 집으로 달려가지 못 한다. 그래서 아빠와 살 부비기를 좋아하는 아들 녀석과 딸, 하루 종일 두 아이들 돌보느라 피곤한 아내에게 언제나 미안함이 앞선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외벌이를 했던 그는 지난 2월 28일 회사에서 해고됐다. 그래서 가끔 주말에 동네 마트에 다녀오는 게 유일한 놀이 중 하나였던 그의 가족에게 이제 마트 가는 낙도 줄었다. 회사에 다닐 때도 노조활동 한다고 집안일도 같이 못했던 그가 해고까지 됐으니, 당연히 아내의 잔소리가 늘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아내는 예전과 다름없이 특별한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다만, 애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면 좋겠다고 말할 뿐이다.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그녀. 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 잠든 가족들을 지켜보다 아내의 흰 머리가 유독 눈에 들어올 때면, 뭔가 결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태섭씨는 오늘도 다른 해고자들과 동료들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시화공단 파카한일유압에서 일하던 그는, 회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2009년 5월말 정리해고 한 32명 동료들의 복직을 위해 앞장서다 올해 초 징계해고를 당했다. 회사는 정리해고 철회 투쟁과정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업무방해와 여러 이유를 덧붙여, 그와 동료 1명을 징계해고한 것이다. 기존의 정리해고자 32명에, 추가 징계해고자 2명, 해고자는 34명으로 늘었다.

 

그는 이제 막 해고자가 된 자신은, 해고자들 사이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며 앞서 해고당한 동료들을 먼저 걱정한다. 오히려 먼저 해고된 동료들에게 그동안 미안함이 많았는데, 이제 같은 처지가 되고 나니 한편에선 후련한 마음도 있다고 말하면서 겸연쩍어한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다른 회사에서 입바른 소리 한다고 몇 차례 해고당한 경험이 있는 그였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 만큼은 꾹 참고 잘 지내보자고 다짐도 했다. 가족도 있고, 혼자의 몸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미국 자본인 파카가 회사를 인수한 후 임금은 줄어들고, 뭐 하나 나아지는 게 없었다. 가끔 갖는 술자리에서 동료들 간에 회사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술자리에서 우리도 노동조합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하지만 감히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앞장 설 처지가 아니었기에 그도 가만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기투합한 몇 명의 동료가 나섰고, 그도 가만있을 수 없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왔다. 그렇게 노동조합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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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카한일유압에서 해고된 이들의 복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 파카한일유압분회
icon_tag.gif파카한일유압

2007년부터 노조 분회장을 맡아 동료 직원들의 입장을 앞장서서 대변하던 태섭씨, 10년 가까이 한 직장에서 한솥밥 먹으며 일했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억울함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던 그가 회사의 입장에선 눈엣가시였는지 모른다.

 

'복제공장' 설립과 해고 발표... 900여일의 싸움

 

2009년 회사는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해고가 불가피하다며 인원수의 절반이 넘는 100여 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예고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물량이 줄었다고 일감을 줄이고, 휴업을 밥 먹듯이 하던 중 나온 얘기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져도 하루아침에 내쫓길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잘나가던 회사가 일시적인 경제위기로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됐다는 얘기를 믿을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회사에 딴 속내가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버젓이 물량과 기술을 뒤로 빼돌려, 경기도 화성 장안공단(외국인투자단지)에 있는 다른 공장에서 자신들이 만들던 것과 동일한 제품을 양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있던 시화공장에는 물량이 없다고 해놓고선 뒤로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결국 물량이 줄었다고 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설마 했는데, 막상 장안공장에 들어가 현장에서 직접 그 광경을 확인하니 그와 동료들 모두 눈이 뒤집히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뒤통수도 이런 뒤통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와 동료들은 이런 부당함에 맞서 질긴 싸움을 시작했다. 회사가 어렵다며 폐업을 거론한 것은 노동조합을 정리하겠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다른 곳으로 회사를 모두 옮기는 '꼼수'라니.

 

파카한일유압에서 벌어지는 요상하고 기막힌 얘기는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었고, <PD수첩>에도 등장했다. 방송과 언론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회사는 애초 100여명 넘게 해고하겠다던 계획을 수정했다. 그러나 32명의 동료들은 그대로 거리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년 가까운 해고 싸움이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잠시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작년 7월, 법원은 1심에서 "32명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회사 쪽은 2008년 7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경영 상황이 악화됐다고 주장하나, 2000년 이후 매년 당기순이익을 유지하면서 매출액도 꾸준히 증가했고, 국내 굴삭기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2009년 10월 이후 매출액이 점차 회복되는 등 정리해고 때 갖춰야 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과 인원 삭감에 대한 객관적 합리성을 결여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주문 감소가 있었지만 감소된 주문량이 사실상 계열회사인 파카코리아에 이전돼 전체적으로 안정된 경영을 영위하는 만큼 정리해고를 해야 할 경영상 필요나 긴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는 판결 후 노조가 먼저 대화로 이 문제를 풀어보자고 내놓은 제안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방귀 뀐 놈이 되려 성낸다고, 회사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반성도 없다.

 

또다른 '소금꽃' 그들

 

징하고 징한 나쁜 기업 파카한일유압 얘기를 들으면서, 무엇이 그네들을 3년 가까이 버티게 했는지 물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함께 싸우는 조합원들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아마도 스스로 정당하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면서 웃는다.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 그리고 정의. 이것이 아마도 이 긴 시간동안 버티게 한 원동력일 게다.

 

해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해고된 동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부업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공단에 식사를 제공하는 밥차에서 일을 하고, 누군가는 낮에 투쟁에 합류한 후 밤에는 대리운전을 나간다. 또 누군가는 일용직으로 날품팔이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파카한일유압의 해고자로, 현장으로 돌아가 당당하게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85호 크레인'에서 승리한 김진숙씨의 소금꽃을 다시 생각한다.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같곤 했습니다."

 

우리시대의 노동은 소모품처럼 함부로 내던져지고 있지만, 노동을 품은 그 사람들은 하나하나 살아있는 소금꽃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최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버려지는 절망같은 삶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피어오르는 그 꽃들. 그 평범하지만 떳떳하고 아름다운, 눈물같은 세월들에게 격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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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비정규직없는 세상을 위한 경기지역 희망김장 담그기 행사가 17일 오전 10시부터 천주교수원교구 수원대리구청에서 열린다.
ⓒ 희망김장 담그기 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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